사진에서 보는 한국의 역사의 흔적들 - 양반과 색동저고리 그리고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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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  사진인데 갓을 쓰고 있는 사진입니다.

    스트리트 패션이라고 쓰여 있는 데 초상화는 아니고 양반으로 보이는 분인데 너무 젊어 보이 다기 보다 영해 보이네요 할아버지가 갓을 쓰고 다니셔서 갓을 많이 보았는데 사진으로 남아 있는 사진이 없어서 새롭게 보입니다. 갓은 둥근 갓이 더 많이 쓰고 다니는 것을 봤는데, 아래처럼 생긴 갓이 있었는데 둥근 갓은 길거리에서 많이 봤는데 아래 갓 모양은 집안에 어르신들 ^^ 위엄 있고 좀 있다는 분들 재는 모습 하실 때 기억이 납니다. 에헴 하고 수염이 긴 분들은 양반 흉내 따라 하던 생각이 새록새록 납니다. ㅎㅎ

    양반의 모습 출처 : 디자이너 파티 

     

     

    1962년 우리 색동저고리로 보이는데요 염색 기술이 발전하기 전에 촌스러워 보이는 듯 하지만 제 기억에는 그래도 우리의 색으로 기억합니다. 북한 어딘가로 장소가 표기되어 있는데 새롭습니다. 한국의 색깔 중에 하나가 저런 노란색도 있었던 것이 기억에는 있는데 팔뚝에 있는 색동저고리 색깔은 분명히 제 머릿속에도 기억이 있어서 무지개떡 생각도 납니다. 

    돌 공기놀이 소녀  출처 : 디자이너 파티 

    1950년 인천의 한국전쟁 폐허가 된 소녀의 모습인데요 우리 아낙네들의 모습 가운데 머리에 물건을 이고 나르는 모습의 한국의 물건을 옮기는 전통의 모습이기도 했는데요 어렸을 적 머리에 뭔가를 이고 나르거나 찬거리를 모내기 시즌에 자주 커다란 바구니에 담아서 이동하던 우리 시골의 모습을 기억해봅니다. 

    머리에 짐을 옮기는 소녀  출처 : 디자이너 파티 

     

    1920~30년 부처님 오신날 행사로 보이는데 개성으로 장소 표기되어 있는데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서 사람들이 모여서 등을 붙이고 하는 정서 등이 있었는데 요즘도 거리에 등을 다는 이유가 되었나 봅니다.

     

    부처님 오신날 1930~30년 출처 : 디자이너 파티 

    1920년대 한국의 역사중에서 아래처럼 동내 중간에 냇물이 흐르던 곳이 있는 마을이 많이 있었는데 빨래와 반찬을 씻고 우물이 있던 곳에서는 물을 길어서 쌀을 씻고 밥을 하기 위해 준비했던 곳인데 그때는 냇물이 너무 깨끗해서 다른 쪽 냇가에는 가재도 살고 고동도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댕기머리 했던 아이들도 보이고 전주인데 한옥의 모습보다는 초가집의 형태가 많이 보입니다. 

    전주 1920년대 한 마을 모습 출처 : 디자이너 파티 

    1920년대 청주이겨의 일본 신사인데 절대 역사의 교훈으로 잊어버리면 안 되는데 1140여 개의 신사가 전국에 있었다고 하는데 여기는 청주 한 지역의 대한불교 자리에 세워진 신사라고 합니다. 절대로 잊지 맙시다 일본 침략의 시절을 그냥 넘어가면 안 될 듯하고 지금도 아베와 그 침략자의 자손들이 잘못했다고 하는 말 한마디 듣고자 하는 노력을 잊어버리면 안 될 듯합니다. 

    1920년대 일본 신사 청주지역 출처 : 디자이너 파티 

    1913년 착공해서 15년6월에 완공된 경성우편국 인데 오늘의 우체국인데 건물이 커보입니다. 근데 이 건물적 가치는 있어 보이는데 지금은 안보이는데 있었으면 역사적 가치로 높게 평가를 받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듭니다. 일본에 우호적으로 쓰였던 아니던 있었더라면 그 역사의 의미를 가르쳐 줄 수 있는 한 건물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겠다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1920년대 경성우체국 건물 모습 출처 : 디자이너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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